2015년에 쓴 글

우리 집 냉장고에는 베이컨이 없다. 얼린 용가리도 없고 계란도 없고 신선한 우유도 없으며 복숭아맛 요구르트가 없는 것은 물론이다. 마시는 요구르트도 없다. 한 달 전에 요구르트 장사하는 고모가 놀러 와서는 내가 싫어하는 유산균 요구르트를 다섯 줄이나 주고 갔는데 유통기한이 지났길래 내가 다 버렸다. 아빠는 냉장고에 넣어두면 다 먹을 수 있는 건데 아깝게 버렸다고 나를 엎드려 뻗쳐 시켰다. 하여튼 우리 집 냉장고에는, 또, 식빵도 없고, 포도 잼도 없고, 버터도 없고 (아빠는 마가린이면 된다고 했다) 짜 먹는 까망베르 치즈는 고사하고 앙팡 치즈조차 없다. 엄마도 없다.

아빠가 고구마를 삶은 날이었다. 아빠는 항상 감자가 고구마나 그런 것들을 삶아서는 이게 케이크 빵 뭐 그런 거 보다 훨씬 좋은 거여, 하면서 식탁에 올려놨다. 그리고 내가 그 고구마를 다 먹지 않는 한 식탁에서 못 벗어나게 했다. 아니 다섯 개를 넘게 삶아 놓고, 어린애가 먹어봤자 얼마나 먹는다고. 아빠의 요리는 거의 고문 같았다. 어느 날은 우유가 마시고 싶었다. 웬일로. 아빠는 유통기한이 지난 우유를 컵에 벌컥벌컥 따라주며 냉장고에 넣어두면 유통기한이고 뭐고 없는겨, 라고 했다. 나는 천천히, 조심스럽게, 울고 싶은 심정으로 우유를 들이켰다. 마지막 한 모금을 삼켰을 때 커다란 콧물 한 덩어리가 내 목을 타고 넘어가는 걸 느꼈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 집 냉장고에는 엄마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엄마가 아주 보기 좋은 크기로 썰어져서, 아주 깔끔하게 진공 포장되어 우리 집 냉장고에 들어있는 상상을 했다. 사실은 그게 현실인 것이다. 엄마는 아빠랑 이혼하고 나서 내가 모르는 동네의 원룸으로 이사 가 버린 게 아니었다. 엄마는 (내가 혼날 까봐) 아빠가 집에 있는 시간을 피해서 집으로 전화를 걸거나 일주일에 한 번 학원 끝날 시간에 맞춰 나를 보러 온 게 아니었다. 그 때 먹었던 짜장 떡볶이는 정말로 뭐랄까 비현실적이게 맛있었던 것이다. 하여튼 그랬다. 우리 집에는 베이컨도, 냉동 피자도, 치즈 케익도, 엄마도 없었다.